"PF 위기" 대란이다.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 PF, 즉 Project Financing은 경제 관련 일반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고 미디어에서는 매일마다 부동산 PF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미디어에서 PF 자체가 문제를 유발한 근원처럼 이야기하고 대중들에게도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지만, PF 그 자체는 부동산 개발을 하기 위해 금융을 조달하는 방법일 뿐이며, 부족한 자기자본으로도 매력적인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에 가깝다.
과거부터 2024년 하반기 현재까지 부동산 PF 리스크의 중심에는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 등 금융기관 있다. 하지만 최근 PF 리스크는 또다른 금융기관인 신탁사에까지 번지고 있다. 필자는 신탁사 PF 위기의 뇌관이 된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동산 PF Risk가 금융권으로 전이된다면 Covid 19이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은행 보다는 PF 대출을 많이 취급한 제2금융권에서 문제가 될 것이고 최근 수년간 PF 참여 주체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자금력이 부족한 약한 고리, 즉 신탁사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금의 부동산 PF 문제는 PF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보다는 우리나라 PF 사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불안정한 재무구조에서 기인한다. 단적으로 해외 선진국의 부동산 PF는 전체 사업비 대비 Equity 비율이 약 30~40% 수준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 부동산 PF는 전체 사업비 대비 Equity 비율이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즉 사실상 사업비의 대부분을 부채에 의존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처럼 극도로 낮은 자본비율과 높은 레버리지로 인해 우리나라의 부동산 PF는 부동산 경기 등락에 따라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부동산 경기 하락기에는 해당 Risk가 사업주에 한정되지 않고 PF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 신탁사, 각종 대주단(은행, 저축은행, 증권사 등)에 전적으로 전가되며 그 영향과 Risk에 대한 비용 부담을 사회 전체가 지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특유의 낮은 자본비율을 가진 부동산 PF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과거 IMF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건설사에 높은 부채비율을 낮추기를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에 자본력을 가지고 개발사업을 주도하던 건설사는 직접 시행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시스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행사가 충분한 규모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동산 PF 제도가 시작되었다. 이에 시행사가 낮은 Equity를 가지고 시행주체로 나서고, 여기에 시공사가 보증을 서서 신용 Risk를 대주단과 분담하며 금융을 조달하는 형태로 우리나라 특유의 형태를 가진 부동산 PF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에서는 시행사 Equity 비율이 낮은만큼 Risk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해당 Risk를 분담하고 있는 주체들과 그 부담범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부동산 PF를 거론할 때 주로 거론되는 주체는 새마을금고 등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이 대부분이지만 이 외에도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참여하고 있는 참여자들은 더 존재한다.
부동산 PF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을 크게 나눠보면 시행사, 시공사, 신탁사, 대주단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1차적으로 위험을 부담하는 시행사는 고유자금으로 Equity를 투입하므로 해당 금액만큼 위험에 노출되며, 추가적인 위험을 지지는 않는다. 2차적인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시공사다. 시공사는 연대보증 혹은 책임준공 의무를 통해 Risk를 부담한다. 그리고 해당 시공사마저 부도 혹은 파산으로 대출원리금 혹은 책임준공 의무 수행이 어려워졌을 때 3차적으로 대출을 해줬던 금융기관까지 Risk가 도달하여 사회전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부동산 PF의 Risk 분담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시행사, 시공사, 금융기관 순으로 위험이 전이되고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약 10년전부터 이 과정에 자금조달의 보증주체로서 참여하기 시작한 주체가 있다. 바로 부동산신탁사이다.
부동산신탁사는 크게 토지신탁과 비토지신탁 2가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부동산 개발과 관련하여 신용 Risk 분담과 관련 있는 것은 토지신탁 부문이다. 토지신탁은 다시 크게 차입형토지신탁과 관리형토지신탁으로 구분되는데, 둘 다 개발을 신탁사가 주도해서 진행한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자금조달을 신탁사가 하는 경우 차입형토지신탁, 위탁자가 직접 자금조달을 하는 경우 관리형토지신탁으로 분류한다.
차입형토지신탁은 신탁사의 고유자금으로 사업비를 조달하며 개발업무 수행 또한 신탁사가 주체로 진행하는 업무를 말한다. 해당 업무 진행 시 신탁사 재무제표에 신탁계정대 대여금으로 금액이 계상되며 손상 징후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인식하는 등 재무보고시 객관적으로 반영되어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도 당국의 관리를 받고 있다. 또 과거 무리한 차입형토지신탁 사업 진행으로 일부 부동산신탁사(대한부동산신탁, 한국부동산신탁)이 청산절차까지 밟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탁사에서 자체적으로 타이트하게 Risk 관리를 하고 있어 최근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대비 관리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관리형토지신탁의 경우, 위탁자가 자금조달을 하며 일반적으로 은행, 저축은행, 캐피탈 등 금융기관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탁사가 신용 Risk를 분담하는 구조는 아니다. 하지만 관리형토지신탁에서 파생되어 개발된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이하 "책준신탁")은 다르다.
책준신탁은 일반적으로 시공사가 부담하는 책임준공의무를 신탁사가 보증하는 형태이다. 즉, 실제 시공능력을 가지고 있는 시공사와는 달리 신탁사의 책임준공의무는 시공을 맡은 건설사가 정상적인 시공 진행이 어려워진 경우 시공 진행이 가능한 시공사를 물색하여 개발사업을 완성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책준신탁에서는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만 준수한다면 신탁사가 재무적으로 손실보는 부분이 없어 Risk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되어왔으며 고유자금이 대여금으로 지급되지도 않으므로 부외부채로서 숫자로 평가가 되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차입형토지신탁 대비 관리가 미흡했다. 따라서 과거 부동산 활황기에는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 수행에 문제가 없었기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었으나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준신탁 상품의 책임 부담 주체와 순서를 보면 1차적으로 시행사(출자 Equity), 2차적으로는 시공사(책임준공의무-시공), 3차적으로는 신탁사(책임준공의무-사업완수), 4차적으로는 대주단(대출원리금 대손 Risk)이 부담하는 구조이다.
책준신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개발 배경 및 성장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책준신탁은 '15년 KB부동산신탁이 상품을 처음 출시한 이래로 급성장하며 부동신산탁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책준 수탁액은 '20년 기준 8.4조원에서 '22년 기준 17.9조원으로 불과 2년만에 약 2배 가까이 성장하며 부동산 호황기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
Source : 금융감독원, KIF한국금융연구원
이와 같은 책준신탁의 성장은 부동산 개발 산업의 상황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08년 글로벌 부동산 금융위기 이후 1군 시공사는 우량 사업장 외에는 직접적인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것을 꺼려왔고 이에 따라 우량 사업장 외 사업의 경우 자금조달을 위한 충분한 수준의 보증을 제공받기가 어려웠다. 2군, 3군 시공사들이 책임준공확약 등 보증을 해도 재무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시공사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도 자금 대여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 부족한 신용을 채워주는 역할로 들어온 것이 책임준공형 관리형신탁 상품을 출시한 부동산 신탁사였다.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시행사와 부족한 신용으로 자금 대여가 곤란했던 대주단, 책임준공확약 등 보증을 제공해도 불충분한 신용 때문에 사업참여가 어려웠던 시공사 입장에서는 Risk를 분담하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으로 원활한 사업진행이 기능해졌다. 또 부동산신탁사 입장에서도 차입형토지신탁은 고유자금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High Risk / High Return으로 부담이 있었으나 책준신탁은 시공사가 준공만 시킨다고 한다면 Risk는 없는, 그럼에도 책준확약을 제공함으로써 높은 수수료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수익원이 되었다. 이렇게 부동산 개발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모든 이해관계가 일치함에 따라 해당 상품은 빠르게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COVID-19와 함께 글로벌한 양적완화 시기에는 낮은 조달비용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1군 시공사들이 수주하지 못한 사업장들이 크게 증가하고 이런 Project에 2군, 3군 시공사가 참여하기 위해 몰리면서 책준상품을 통한 부동산신탁사의 수익은 눈부시게 증가했다. 금융계열 신탁사(금융지주, 보험, 증권사 계열)은 '15년 기준 토지신탁 수수료수익이 약 449억원에 불과했으나, 부동산 경기가 가장 활황이었던 '22년 약 5,342억원으로 약 12배 수준 증가했으며, 전체 신탁사 산업 기준 토지신탁 수수료수익은 '15년 기준 2,285억원에서 '22년 약 8,999억원으로 약 4배 증가하였다.
Source : 금융투자협회
이러한 수치에서 볼 수 있듯이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은 금융계열 신탁사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는데, 이는 신탁사가 제공하는 책임준공확약 또한 일종의 보증 제공이므로 보증능력, 즉 신용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별도로 추가 보증을 제공해줄 모회사가 없는 비금융계열 신탁사 대비 금융계열 신탁사는 모회사인 금융지주사, 보험사, 증권사 등의 신용을 기반으로 더욱 더 높은 성장추이를 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책준신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을 받은 PF 대출규모도 함께 증가해왔으며, '23년 기준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이 제공된 PF 대출 규모는 약 23.8조원 수준이 되었다. 금융계열 신탁사 약 19.7조원, 비금융계열 신탁사 약 4.1조원으로 구성되며, 이는 신탁사의 자본총계 대비 각각 8.0배, 1.2배 수준의 규모이다.
Source: Dart 감사보고서
그러나 상기했듯이, 책준신탁에서 신탁사가 부담하는 의무는 "책임준공"에 한정된다. 시행사, 시공사에 문제가 발생하여 기한 내에 준공이 어려워지더라도 시공사 교체 등의 방법을 통해 준공만 시킨다면 신탁사는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시공사까지 문제가 번진 경우에만 Risk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다면 일단 단순 관리형 토지신탁과 동일한 용역 서비스만 제공하고도 그보다 더 높은 수수료율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인 것이다.
이에 초기에는 신용도가 높은 금융계열 부동산신탁사만 취급하던 책준신탁을 해당 상품의 높은 수익성을 보고 비금융계열 신탁사도 취급하기 시작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책준신탁을 판매 시작한 이후 꾸준히 부동산 경기는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으며 COVID-19 시기에는 자금조달 비용이 감소하고 개발 건수는 증가하며 매매가 또한 꾸준히 상승추이를 보여 책준신탁에서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책준신탁은 명목은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위험이 없는, 높은 수익성의 상품으로 신탁사 내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취급을 받아왔다.
문제는 최근처럼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 Risk를 해당 PF사업에 참여했던 주체들이 나눠 분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경기가 악화되고 상품성이 낮은 부동산 개발 건, 예를 들면 생활형숙박시설, 일반 상가,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 등에서부터 매매가 하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여기에 더해 물가상승으로 공사비는 오히려 상승압박을 받자 많은 사업장들이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재무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2군, 3군 시공사이다. 시공사는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시행사는 떨어진 부동산 시세에 따라 분양대금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에 동의해주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며 서로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공사는 여러 곳의 사업장에서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자금경색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통계로 나타난 것이 '23년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년 이후 약 300건 전후로 발생하던 건설사 폐업이 '23년 기준 581건으로 증가했고 특히 '23년 12월에는 월 기준 74건이 발생하였다.
시공사가 문제가 생긴 PF사업장에서 다음 책임의 주체는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한 신탁사가 된다. 시공사가 기한 내에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였으므로, 신탁사가 추가 6개월의 기한 내에 기존 시공사 혹은 신규 시공사를 물색하여 최초 계약대로 개발 사업을 완성시켜야 할 의무를 대주단에 대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쟁의 소지가 생긴다. 시공사의 책임준공의무는 명확하게 해당 건설사의 시공의무를 가리키지만 신탁사의 책임준공의무는 그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신탁사의 책준신탁 관련 계약서를 보면 사업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계약서상 신탁사의 책임준공의무에 더하여 신탁사가 해당 책임준공 의무를 정해진 기한 내에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해 지연손해금을 부담해야 하며 지연손해금은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 상당액으로 명시한 내용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탁사는 금융투자업자이며, 금융투자업자는 자본시장법 제43조 5항에 따라 지급보증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15년 처음 출시된 책준신탁 상품은 해당 행위가 신탁사의 지급보증 행위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되었던 이력이 있으며, 이에 대해 금감원은 '16년 부동산신탁사 준법감시인 간담회에서 책임준공확약은 신탁업자 본인의 채무에 해당하며 지급보증 및 손실보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신탁사들은 활발히 책준신탁 영업을 진행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논의가 있었던 '22년 제18차 증권선물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신탁사측은 책임준공확약은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하지 못했을 때 준공을 완료하는 신탁사의 채무이고,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채무불이행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이지 제3자의 채무를 보증하거나 넘겨받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한다. 이에 대해 증선위 위원들은 대출원리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의무로 정해놓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실상 신용공여가 아니냐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신탁사측은 책임준공확약은 책임준공을 완성하는 의무이므로 신용공여와는 성질이 다르다는 취지로 진술한다.
결론적으로 신탁사와 대주단은 서로 동상이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탁사는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대출원리금 부담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기는 했으나, 책임준공을 이행하면 신탁사가 대출원리금에 대해 지급보증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므로 책준신탁을 중수익 중위험 정도의 상품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 저축은행 및 증권사 등 대주단은 책준신탁에 대해 대주단의 대출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졌을 때 신탁사를 대상으로 청구하여 회수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24년 3월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PF대주단은 준공 지연을 사유로 신한자산신탁에 57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에는 해당 부동산 담보만으로도 충분히 대출원리금 회수가 가능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 등 행동에 나서지 않았지만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라 실제 부동산만으로는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신탁사의 책임부담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시공사와 달리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은 책임의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고 상호간의 동의가 명징하지 않은 상태에서 활성화되어 리스크 규모가 불확실하고 향후 신탁사의 재무 건전성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신탁사는 현재까지는 문제가 된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신탁계정대 투입을 통해 우선 준공의무를 이행하고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손해배상청구 관련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아 해당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한 신탁사와 대주단의 상호 의견차이는 신탁사는 준공 지연에 따른 연체이자 수준, 대주단은 대출원리금 전액으로 서로 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신탁사들은 아직 책준신탁 Risk에 뾰족한 대안은 없는 상태이다. 만약 법원의 판결에서 신탁사의 책임 부분을 대출원리금 전체로 보는 경우, 90년대 봤던 신탁사들의 부도 혹은 청산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신탁사들의 자본금 대비 책준신탁 수탁고 규모는 상기했듯이 신탁사 자본금의 4.1배, 현금성자산의 17.6배 수준에 달하는 규모이다. 즉 전체 책준신탁 중 5~6% 수준만 문제가 생겨도 신탁사의 현재 보유 현금수준에서는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금융계열 신탁사의 경우, 모회사의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유동성 제공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비금융계열 신탁사의 경우 이러한 외부 지원을 바라는 것이 쉽지 않다. 비금융 계열사의 보유 현금 대비 책준신탁 수탁고는 약 7.8배로 전체 책준 사업장 중 약 13%에 문제가 생기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준신탁과 관련된 판결에서 배상금 범위가 대출원리금 전액이라고 나오는 경우 다수 사업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출원리금 손배 소송의 진행 혹은 손배 소송을 피하기 위한 고유자금 투입으로 현금 유동성에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현행 금융투자법 규정에 따르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정은 신탁사에 150% 이상을 유지하도록 기준을 가지고 있다. '24년 반기 기준 각 신탁사가 공시한 NCR 비율을 보면 278% ~ 3,220%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공시되어 있다. 따라서 해당 공시만 본다면 부동산신탁사의 재무구조는 규제(150%) 대비 필요 이상으로 탄탄한 상황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Source : 금융투자협회
그러나 이는 책준확약 등으로 인한 신용 위험이 총위험액에 충분하게 반영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NCR 비율 산출 공식을 보면 [영업용순자본 / 총위험액]이며, 영업용순자본은 [자본총계 - 유형자산 - 신탁계정대의 자산건전성에 따른 차감비율 - 자산평가손실 및 기타항목]으로, 총위험액은 [주식위험액 + 대여금, 지급보증 등 신용위험액 + 운영위험액]으로 산출된다.
따라서 책준신탁에 신탁계정대 등을 투입하고 손해배상 관련 소송으로 피소된 상황에서는 해당 신용위험액에 책준신탁 관련 금액을 각 사업장별 평가를 통해 충분히 반영해야하지만 이것이 불충분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신한자산신탁을 보면 책준 PF 대출잔액은 무려 5.6조원 수준임에도 '24.1H 기준 총위험액은 약 146억원 수준으로 산출되고 있다. 책준으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가 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전액 NCR 산출시 반영하는 것도 과하지만 총위험액으로 산출된 금액이 전체 책준규모의 0.3%도 안되는 것 또한 Risk를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23년말 기준 책준 PF대출잔액 중 10% 수준으로 문제가 생기고, 관련 대출원리금 전액을 부동산신탁사에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한다는 가정하에, 해당 금액을 총위험액에 추가 반영한다면 부동산신탁사의 평균 NCR 비율은 약 107% 수준으로 규정 150%에 훨씬 미달하는 수준으로 하락할 수 있다.
조정NCR비율(PF원리금 10% 손실발생 가정시)
Source : 금융투자협회
그리고 NCR 비율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면 신탁사는 영업이익을 발생시키기 위한 충분한 양의 신탁을 수주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부동산신탁사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데 큰 차질로 다가올 수 있다.
대주단과 신탁사간 소송에서 신탁사의 손해배상금 범위가 대출원리금 전액인 것으로 결론날 경우, 상기와 같이 비금융계열 신탁사는 재무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얻게 될 것이며 일부 신탁사는 과거와 같이 부도 및 청산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또 부도/청산과 같이 극단적인 상황은 피한다고 하더라도 NCR비율의 급격한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며, 이는 결국 부동산 개발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향후 신탁사 입장에서 책준신탁은 신용 Risk를 시공사, 대주단과 분담하는 것이 아닌 시공사 이후 전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매우 High Risk의 상품이 될 것이므로 과거와 같이 활발한 영업이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는 책준신탁이 없으면 향후 1군 시공사가 들어오지 않아 2군, 3군 시공사가 참여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은 수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소규모 PF 사업은 우량 사업장 대비 Risk는 있으나 결국 사회적으로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토지 혹은 부동산을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임에도 신탁사에 과도한 Risk 부담을 요구함에 따라 관련 산업 자체가 쪼그라들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PF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각 참여주체가 기대수익 수준에 맞는 수준의 적절한 신용 Risk를 분담하는 것이다. 각 주체가 예상 가능한 수익의 범위 수준만큼 Risk를 부담하는 구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업이 개시가 되고,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든 문제가 생겨서 손해를 분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든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큰 갈등 없이 상황이 마무리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책임준공형 관리형신탁에서 대주단이 신탁사에 요구하고 있는 Risk는 기대수익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과도한 수준이다. 손해배상금으로 대출원리금 상당액을 모두 요구한다면 사실상 대주단에 대해 대출보증을 서기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는 단순히 금번 책준신탁에서 문제가 되는 금액을 넘어서서 향후 부동산 PF사업 자체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PF의 본질은 결국 Risk의 분담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볼 때 신탁사의 손해배상 범위에 대한 소송에서 어느때보다 법원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책준신탁의 손해배상 범위는 향후 부동산 산업의 향방을 가늠해볼 때도 눈여겨볼만한 이슈라고 하겠다. 소송에서 신탁사에 적절한 수준의 Risk 분담을 요구하는 판단이 나온다면 향후에도 책준신탁을 통한 활발한 개발사업이 기대되나, 대출원리금 전액에 대한 Risk 부담을 요구하는 판단이 나온다면 향후 중소규모 부동산 개발은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을 최소 20% 수준으로 높여 PF 건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에 따라 PF 대출 한도를 부여하는 방안 등을 통해 PF 사업구조 자체의 Equity 비율 상향으로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해외사례를 그대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급진적인 방안으로 현실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현재 규모있는 자본력을 가진 시행사를 꼽자면 엠디엠, DS네트웍스, 신영, SK D&D, KT에스테이트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시행사에 자기자본율을 높이기를 요구한다면 당연하게도 개발사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부동산 PF의 구조에 대해 기형적인 형태임을 지적하며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공사의 연대보증, 책임준공 확약, 신탁사의 차입형토지신탁, 책준신탁 등은 단순히 기형적이라고 비판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부동산 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국내 실정에 맞게 부동산금융이 유연하게 적응해온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부동산 PF의 본질은 결국 각 주체들이 기대이익에 맞도록 Risk를 적절한 수준으로 분담하는 것에 있다. 그 주체들 중에서도 자본이 대주단 대비 부족한 신탁사에 과도한 책임을 부담시켜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탁사가 책준신탁 등의 상품을 통해 부동산 개발 사업에 신용보강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은 오히려 Risk를 여러 주체가 분담하여 위험이 분산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며 발전적인 형태의 부동산 금융이라고 보인다. 책준신탁 이슈에 있어서 실제 문제는 두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이다. 책임범위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판단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책준신탁의 Risk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관련된 위험이 NCR 비율 등 신탁사의 재무건전성 모니터링을 위한 지표에 적절하게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기했듯이 책준신탁 상품의 각 주체별 책임 범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최근 진행 중인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 부분은 기대이익과 기대위험은 서로 유사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법원에서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 회계, 재무적으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책준신탁의 Risk를 재무보고 및 NCR 비율에 적절히 반영할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보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자산신탁은 이미 ‘23년말 기준 공시한 재무제표에 책준신탁으로 인해 예상되는 손실에 대해서 기타충당부채를 인식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이 외 신탁사의 경우 실제로 고유자금으로 대여금이 나간 신탁계정대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충당부채 등 인식을 하고 있지는 않은 실정이다. 아직 법률적으로 명확한 판단이 내려진 상황이 아니어서 책준신탁으로 인해 추가적인 손실 금액이 신뢰성 있게 추정이 어렵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해당 이슈가 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볼 때 신뢰성 있는 추정 방안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삼일PwC를 포함한 회계법인, 신용평가사 등 사업성 검토를 할 수 있는 제3자 외부기관을 통해 사업성 검토 및 추정 손실 금액을 산출하여 충당부채를 계상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NCR 비율도 마찬가지로 총위험액에 신용위험액이 포함되도록 명시되어 있어 책준신탁 관련 위험이 포함되는 것이 적절하지만 현재 산출되고 있는 NCR 비율을 보면 책준신탁 관련 위험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 비율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또한 외부기관의 평가를 통해 실제 신탁사의 재무건전성을 적절하게 평가하여 지표로 산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적절하게 산출되지 않은 지표를 보고 재무건전성을 판단하고 위험성을 낮게 판단하는 것은 금융 Risk 발생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 산업 발전을 위해 부동산신탁사가 우리나라 부동산 상황에 맞게 개발하여 PF의 Risk를 더 많은 주체가 분담하여 원활한 사업진행을 가능케한 책준신탁의 순기능은 지킬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금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린다면 부동산 산업의 퇴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현 책준신탁의 위기를 부른 이유인 Risk 평가 미흡 문제를 1차적으로는 외부평가 및 2차적으로는 해당 평가에 대한 외부감사 등의 절차를 통해 보완하여 부동산 PF에서 부동산신탁사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