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의 ‘2024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파괴’가 향후 10년 간 인류를 위협할 장기적인 위험 요인 중 3위로 선정됐다.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은 ‘극심한 기상이변’과 ‘지구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 다음으로 ‘생물 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파괴’를 심각한 위기로 지목한 것이다.
생물다양성 감소를 중심으로 한 자연 자본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이와 관련 글로벌 규범이 빠르게 정립되고 있다. 자연의 손실은 곧 재무적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설립된 TNFD(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는 지난해 9월 기업의 자연 관련 리스크를 평가하고, 관리하며 공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글로벌 3대 공시 기준인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은 E4 항목에서 생물다양성을 이미 다루고 있으며,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도 기후 공시 다음 주제로 자연 및 생물다양성을 포함할 것을 검토중이다. 기업 비즈니스와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기업의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 TNFD: 2021년 6월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자연기금(WWF) 등 국제기구의 주도로 설립
자연 자본, 생물다양성, 생태계 서비스는 독립적인 개념이지만, 각 개념 간 상호 의존성과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인해 혼용되고 있다. 자연 자본, 인적 자본, 사회 자본 등 다양한 자본을 기업의 의사결정에 통합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는 글로벌 비영리 조직인 캐피탈 연합(Capitals Coalition)은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 그리고 생태계 서비스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출처: Capitals Coalition, Natural Capital Protocol
자연 자본은 생물다양성을 포함하여 토양, 공기, 물, 광물 등 자연이 인류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모든 자원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에 주목하여 자연을 ‘자본’이자 실질적인 자산(Stock)으로 인식하여 경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자연 자본의 필수 구성 요소인 생물다양성은 유전적, 종적, 그리고 생태계 수준에서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 자본은 생태계 내에서 서로 상호작용하여 기업과 사회에 직간접적인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량과 물, 목재 등의 자원을 제공하는 공급 서비스(Provisioning Services), 기후 조절, 수질 정화, 습지가 홍수를 완화하는 등의 조절 서비스(Regulating Services), 그리고 자연 경관 및 관광지 등의 문화 서비스(Cultural Services) 등이 이에 해당된다.
‘네이처 포지티브’는 국제사회에서 자연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자연과 생물다양성이 손실을 멈추고, 회복되어 자연 자본이 증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가 발표한 보고서인 ‘Nature Rising Risk: Why the Crisis Engulfing Nature Matters’는 생물다양성 감소와 자연 자본 손실이 글로벌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동 보고서는 이러한 리스크를 완화하고 자연을 복원하기 위한 전략으로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를 제안했다.
해당 회의에 참석한 글로벌 리더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네이처 포지티브’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2021년 G7 정상회의에서 리더들은 전 세계가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자연회복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네이처 포지티브’를 실현해야 한다는 의견에 합의했다.
2022년에 열린 제15차 UN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COP15)에서 최종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2030년까지 자연 손실을 멈추고 되돌리며, 2050년까지 자연을 완전히 회복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목표는 '네이처 포지티브'의 핵심 개념과 일치한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넷제로(Net-Zero)’를 공동 목표로 하고 있다면, 자연 손실과 생물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해 ‘네이처 포지티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 총회 (UNFCCC COP21) | 생물다양성협약 제15차 당사국 총회 (UNCBD COP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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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 개최 |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개최 |
파리협약(Paris Agreement) 채택 |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채택 |
넷제로(Net-Zero) 목표 |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목표 |
OECD, IPBES, WWF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 손실에 따른 자연 리스크에 대한 심각성을 전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발표된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 보고서 2022(Living Planet Report 2022)’는 글로벌 생물다양성 감소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본 보고서의 핵심 지표이자 전 세계 포유류, 조류, 어류, 파충류 및 양서류의 변화를 추적하는 지표인 지구생명지수(LPI)는 글로벌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조기 경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구생명지수는 1970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에서 관찰된 5,230종의 생물종을 대표하는 3만 1,821개 개체군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지난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야생동물 개체군 규모가 69% 감소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은 94% 감소해, 가장 큰 생물다양성 위협을 겪는 지역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지난 30년간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한 정책적 개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보고서에 제시된 결과와 유사한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현황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국제기구인 IPBES*는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자연 자본의 지속적인 감소의 주요 원인을 1) 육지 및 해양 사용 변화, 2) 과도한 자원 채취, 3) 기후 변화, 4) 오염, 5) 침입종 도입 등 총 5가지로 제시했다. 이러한 원인을 유발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대부분이 농업, 운송, 광업 및 제조업 등 전세계 비즈니스 활동에서 비롯된다. 즉, 인간의 활동이 생물 다양성과 자연 자본의 감소를 초래하며, 이는 다시 인간의 활동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자연 자본과 인간 활동 간에는 상호 연관성이 존재한다.
*IPBES: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평가를 제공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같은 역할을 하는 IPBES는 생물다양성협약(CBD)의 과학적 자문을 위해 2012년 설립된 정부간 연구협의체
출처: WWF, 2022 지구생명 보고서
출처: Biodiversity and Business: Challenges and good practices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산정한 PwC의 2023년 분석에 따르면, 세계 경제 생산량의 절반 이상(55%)을 자연 자본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58조 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 “The Economic Case for nature”는 전 지구가 자연 자본 손실과 생물다양성 대응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연간 2조7천억 달러 손실 초래할 것이라고 발표하며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자연 자본 손실과 생물다양성 감소는 인간의 생존과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리튬을 추출하고 처리하는 데는 상당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또한, 건설에 필요한 목재는 비옥한 땅이 있는 숲에서 얻을 수 있다. 부동산 개발자들이 부동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연 경관을 활용할 때도 자연 자본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의약품의 50% 이상이 자연에서 유래된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자가 감소하면 농작물 수확량이 줄어들어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식품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결국 생물다양성 감소는 다양한 방식으로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기업 운영과 시장 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PwC는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 감소가 각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산업별 가치 사슬 전체에 내재된 자연 자본 의존도를 탐색하고 평가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 걸친 산업별 비즈니스 복잡성을 상세하게 분석하기 위해 PwC는 ENCORE(Exploring Natural Capital Opportunities, Risks and Exposure)와 EXIOBASE 두 가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ENCORE를 이용하여 산업별 자연 자본 의존성을 평가했고, EXIOBASE를 통해 특정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전반적으로 파악하여 공급망에서의 환경적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산업이 직접 운영에서 높은 또는 중간 정도의 자연 자본 의존도를 보였다. 직접 운영에서의 의존도가 낮은 산업이더라도 공급망이나 다운스트림 활동 영역에서 자연 자본 의존도가 높거나 중간 정도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PwC는 대표적인 20개 산업을 중심으로 각 산업별 자연 의존 수준에 따라 세 가지 카테고리(의존도가 높은 산업, 의존도가 중간 정도인 산업, 의존도가 낮은 산업)로 분류했다.
자연 자본 의존도가 가장 높은 산업은 1)농업, 2)임업, 3)어업 및 양식업, 4)식음료 및 담배, 5)건설업으로 나타났다. 해당 산업의 직접 운영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100%가 자연에 의존하며, 이들 산업의 공급망에서도 최소 50%가 자연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5개 산업은 총 13조 달러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는 전 세계 GDP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건설업은 직접 운영에서 6.5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자연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가장 주목해야 할 산업이다. 자연 자본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에 속한 기업일수록 자연 자본 손실에 의한 재무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소매 및 소비재, 부동산, 광업 등 11개 산업은 공급망과 직접 운영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의 최소 35% 이상이 자연 자본 의존도가 중간 수준이거나 높은 수준이다.
자연 자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산업은 총 4개 산업이며, 공급망과 직접 운영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의 35% 미만이 자연 자본 의존도가 중간 수준이거나 높은 상태를 보인다. PwC는 보고서에서 자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산업이라도 향후 관련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관리해야 함을 강조했다.
※비고: 자연 자본 의존도는 사업 활동으로 생성되는 경제적 가치가 생물다양성 감소의 위험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높은 의존도는 자연 환경이 크게 변화하면 해당 사업 활동이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간 의존도는 자연 환경 변화로 인해 재정적 수익이 상당히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수준이고, 낮은 의존성은 자연 환경 변화가 사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의미다.
PwC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추가 조사한 결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의 대부분이 자연과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연이 훼손되거나 생태계 서비스가 감소하면, 이 지역의 재무적 위험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20개 산업을 분석하였으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 중 20%를 차지하는 9개 산업이 자연 자본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건설, 식음료 및 담배 산업이 가장 높은 의존도를 보였으며, 나머지 임업, 어업 및 양식업, 상하수도, 에너지, 화학 및 소재, 공급망 및 운송 분야도 높은 의존도를 보였다.
자연 자본 손실은 자본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PwC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증권거래소 19곳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 절반 이상(약 45조 달러)이 자연 자본 손실에 의한 위험에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거래소 19곳 가운데, 대만증권거래소(Taiwan Stock Exchange(TWSE))가 자연 자본 손실에 의한 위험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PwC는 TWSE에 상장된 기업 가치의 70% 이상이 자연 자본 손실에 의한 재무적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했으며, 이는 자연 자본 의존도가 중간 정도인 에너지 기업이 TWSE 상장 기업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거래소인 뉴욕 증권거래소(NYSE)는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높은 또는 중간 정도의 자연 자본 의존도를 보였다. 이는 상장 기업의 대부분이 은행업 및 정보기술과 같은 자연 자본 의존도가 낮은 산업에 속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거래소의 경우, 19개 국가 중 9번째로 자연 자본 손실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PwC의 추가 분석 결과, 한국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중 자연 자본에 중간 정도 또는 높은 수준으로 의존하는 기업들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약 9,89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거래소 전체 가치의 71%를 차지하며, 특히 디지털 통신과 에너지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1) 기타: 하수 및 폐기물 처리, 교육, 역외 조직 및 기구, 화석 연료 정제, 기타 제조업, 기계 및 장비, 사업 활동, 기타 서비스 활동, 고용된 가사 노동자가 있는 가정, 공공 행정, 펄프 및 종이 제품, 재활용, 임대 등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 감소는 기업의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wC는 기업이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을 기후변화와 동일한 수준에서 리스크를 평가하고 전략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기업의 자연 자본과 생물다양성 관련 리스크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References
PwC, Managing nature risks: From understanding to action
PwC, Nature & biodiversity Creating a nature positive future
PwC, Biodiversity and Business Challenges and good practices
PwC, 2023 PwC Network Environment Report
PwC, How investors in Asia Pacific can manage nature-related risks
WWF, 지구생명보고서 2022
WEF, Nature Rising Risk: Why the Crisis Engulfing Nature Matters 2020
IPBES, Models of drivers of biodiversity and ecosystem change